봄비라는 말 속에서 너를 만났다. 지친 뒤척임만 가득한 눈을 보며 그 속으로 살러 가고 싶었다. 낭떠러지 같은 말 봄비 속에서 너와 사랑을 했다. 비명도 없이 절벽을 뛰어내리던 꿈. 너와 살고 싶은 저녁이 봄비라는 말 속에 있다. 천국이 있다면 봄비라는 말 속에서부터 시작될 거라고 나무들이 키를 키우며 책처럼 펼쳐지던 날 있었다. 아주 오래전 거짓말처럼 또다른 생이 시작되었고, 단절은 나를 멈추게 하지만 절벽은 나를 뛰어내리게 하였다고 나는 기록한다. 나의 절망은 비루하였고, 꽃이 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날들이 네가 떠나간 흔적처럼 남았다.
봄비를 맞으며 골목을 지나가는 연인들. 저들은 서로를 버티느라 또 얼마나 힘겨울 것인가. 내가 없이 봄비가 내리는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