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라고 발음하면 세상 모든 너는 '너' 에게 와서 갇힌다
담배 연기 같은, 창틀의 먼지 같은, 깨진 유리 조각 같은, 커피 사탕 같은, 산마르코 광장에 고이는 바닷물 같은, 찰박찰박하는, 터질랑 말랑 하는, 목련 꽃잎에 내려앉은 봄햇살 같은, 새벽 복도에 혼자 앉아 있는 우유 팩 같은, 잘못 배달된 엽서 같은, 나비 날개 같은, 새벽 기도회가 열리는 교회 의자 같은, 자전거 페달 같은, 액자 위의 얼룩 같은, 비껴 앉은 사람의 옆열굴인, 귀밑을 스치는 바람결인,
계절은 가을이고 이국의 노을 속에 흐르는 <수이사이드 이즈 페인리스>* 그리고 스위스산 오르골에서 흐르는 <러빙 유>
할 수만 있다면 '러빙 유'를 당의정처럼 입고 너의 입속으로 들어가 삼켜지고 싶어, 나는 너의 내장 기관을 따라 흘러가다 너에게 흡수되어 너를 망쳐 놓고 싶어, 나는 심하게 훼손된 사람, 더 이상 가망 없는 봄날을 그리워하는 한심한 족속, 나는 나쁜 너에게 들어가 영원히 죽지 않는다
* 케런 앤의 노래 <Suicide is Pain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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