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에게 눈을 달라 했다

나는 눈을 주었다

겨울이었다

 

당신은 나에게 입을 달라 했다

나는 입을 주었다

당신은 나에게 손을 달라 했다

나는 손을 주었다

겨울이었다

 

북풍이 씩씩한 주먹으로 구름을 잔뜩 뭉쳤고 눈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발로 걸어갔다

 

눈이 없어지자

눈물이 안으로 흘러 고였다

입이 없어졌기 때문에 울음이 안으로 잠겼다

나는 아름다운이라는 말도 하지 못한 채

거울을 생각했다

심장은 똑딱똑딱

 

손이 없어진 내가

어떻게 거울을 열까

눈도 보이지 않는 내가

어떻게 거울을 볼까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얀 눈은 토닥토닥 세상을 덮고

까만 밤의 지붕들을 덮고

당신의 발등을 덮고

어둠 속에서 혼자 녹았다가 밤새도록 꽝꽝 얼었다

밤새 아주아주 커다란 거울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내 발로 걸어가 차갑고 비릿한 거울에 볼을 대었다

심장은 똑딱똑딱

 

울고 있는 눈사람들이 아주 많은 계절이었다

 

 

 

'text 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송찬호, 초록 토끼를 만났다  (0) 2024.09.24
진은영, 우리는 매일매일  (0) 2024.06.07
전욱진, 여름의 사실  (0) 2023.06.09
성동혁, 망루  (0) 2023.05.16
김륭, 수상한 동물원  (0) 2022.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