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방 창문에선 나무들이 아주 가까이 보여. 가끔 나무가 흔들리다가 눈빛이 검게 변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소스라치게 놀라곤 해.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보면 나무는 그저 나무일뿐이지만,
종이로 만든 새를 날려 보낸다. 기도는 새가 될 수 있다고 몇 번이고 다짐하고 다짐하면서. 문틈으로 스며드는 빛을 보며 제발 나를 찌르지 말아달라고 말한다.
맹수를 쏘고 꿈에서 깨어났어. 아니, 번번이 죽은 짐승이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 쏘았지. 무엇이 진짜인지 모르겠어. 손에 들린 가위와 머리카락,
안으로 잘 닫혀 있는 물고기들처럼. 물에 가까운 얼굴을 갖기 위해 두 눈은 더 오래 흘러넘쳐야 하는지 모른다.
왜 아무 것도 살아 움직이지 않는 거야? 파랗게 질린 입술로 올려다보는 저녁. 날아가던 새떼가 멈춰 있는. 잘 깨지지도 않는 하늘.
외투가 먼저 돌아와 있는 방에서. 우리는 익숙하게 마주앉아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에겐 따뜻한 잠이 필요했다. 주저앉아 울 햇볕이라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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