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2

이승희, 여름의 대화

2018. 12. 23. 23:56
  그녀는 가끔 내게로 소풍 온다.
 
  그녀는 그릇을 닦다말고 골목을 건조하게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접시가 불안하게 매달린 손 끝으로 여름이 왔다. 죽은 잎과 산 잎을 모두 달고 있는 화분이 제 마음이 기우는 쪽으로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말없이 눈만 깊어지는 오후 그녀가 피는 담배 연기처럼 거대한 적란운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종일 선풍기가 방 안을 돌아다녔으며 도시엔 먼지처럼 모래가 흩어졌다. 숨을 곳이 여름밖에 없다면 믿을 수 있겠어? 그러니깐 뭐든 끝이 있지 않겠어요? 종일 라디오를 들었다. 창문 아래로 벽을 지나 온 물의 흔적이 벽지에 죽은 다알리아처럼 피었다. 수시로 나는 나를 만나지 못하고 잃어버리곤 해. 가만히 내 몸을 내려다 볼 때 참 쓸쓸해. 골목 어디쯤을 휘청이며 걸어가는 내 마음을 만나는 저녁. 내가 울지 못하는 이유는 내 몸에 내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불안하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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