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어딘가에 산기슭처럼 무너진 집 한 채 있다면 그 옆에 죽은 듯 늙어가는 나무 한 그루 있겠다. 내 몸 어딘가에 벼랑이 있어 나 자꾸만 뛰어내리고 싶어질 때, 밭고랑 같은 손가락을 잘라 어디에 심어둬야 하는지 모를 때, 늙은 나무 그늘에서 잠들고 싶어. 죽을힘을 다해 꽃을 피우는 일은 못된 짓이다. 죽을힘은 오직 죽는 일에만 온전히 쓰여져야 한다. 당신도 모르게 하찮아지자고, 할 수만 있다면 방바닥을 구르는 어제의 머리카락으로, 구석으로만 살금살금 다니면서 먼지처럼 쓸데없어지자고. 한없이 불량해지는 마음도 아이쿠 무거워라 내려놓고, 내 몸 어디든 바람처럼 다녀가시라고, 당신이 나를 절반만 안아주어도 그 절반의 그늘로 나 늙어가면 되는 거라고.

 그러면 나 살 수 있을까?

 내 몸 어딘가에 나 살고 있기나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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