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는
잊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마음 약한 사람들의 견해다.
고통은 고통대로 간결한 법칙이 있어서
겪고 나면 대개 말은 사라지고 이상한 색깔만이 남는다.
안개에 연루된 자라고 모욕하지 말라.
나는 안개 속에서 태어났다. 안개는 나의 진술이다.
안개를 벽으로 여긴 적은 없다.
다만 화분이라면 깨어 버리고 싶었고
국가라면 멸망시켜 버리고 싶었을 뿐이다.
너무 많이 사랑했는데도
내게 남은 것은 사람이 아닌 문장밖에는 없다.
그대, 내 젊은 피 속에 흐르던 그 꽃들을 용서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나의 죄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
사랑하는 것이 많을수록 위험해지는 이 세상에서
나의 간극은 극단이었고
나의 극단은 간극이었으니
결국 안개였다. 나는 안개에서 자라났다.
편견이 사상보다 심오하고
어떤 목숨이든 아무런 계통이 없다는 것과
비극의 설계를 섭렵하게 된 계기도 그 안개 속에 숨어 있었다.
안개가 우리를 죽이고 살린다 해도
안개에 대해 가르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개에 대해 가르친다는 것은 불행하다.
그리하여 나는 안개의 집을 불태운 그날에
말문이 막히듯 너를 추억한다.
안개를 각성하듯 추억을 각성한다.
병원 긴 복도 야윈 의자에 홀로 앉아 있으면
어둠이 어둠 같지 않았던 그가 나였던 것 같지도 않은 오늘에마저
쉬운 단어들로 암호를 만드는 무자비한 안개여.
여기 이 세계는 고독과 치정이 호황이고
나는 인생이 기적이라고 자부하는 자들이
여전히 무섭다. 그대, 너무 사랑해서 화분이라면 깨어 버리고 싶고
국가라면 멸망시켜 버리고 싶은 그대,
나는 안개 속에서 방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개의 주인은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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