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2

김하늘, 살구눈물

2019. 5. 24. 19:33
나는 막 방금 울었는데
태어나서 처음 울어 본 기분이 들어
캐비닛 속에 오랫동안 잊혀져 있다가
오늘 꺼내 본 불어사전처럼
그렇게 낡고 낡은 눈물이 났어
괜찮아,
라고 말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모든 게 괜찮아질 것 같았어

부서진 크래커처럼,
망가진 모래성처럼,
흩어질 대로 흩어져서 가루가 된 마음으로
아직 버리지 못한 일기장 같은 건 없어
다만 조용해지는 것, 그 가느다란 고요 속에
내 심장을 두고 왔어
그래서 눈물이 나나 봐
아무런 통증도 없는

숨을 쉰다
어디선가 예쁜 손이 나타났고
그 손이 내 뺨을 감싸 쥔다
따듯한 등에 업혀 있는 느낌이 나
먹기 좋게 식은 스프를 목구멍으로 넘기고 있어
어디선가 다정한 냄새가 나고……

이제야 평온해졌어
다 망가졌는데,
삶은
살구빛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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