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용히 미쳐가고 있었다
물컵 안에 뿌리내리는 양파처럼 골방에 누워
내 숨소리 듣는다, 식어가는
유성의 궤적을 닮아가는 산[生] 짐승의 리듬이
빈방으로 잘못 든 저녁을 잠재우고 있다.
물질의 세계로 수렴하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붕대 같은 어둠이 있어 너에게 사행(蛇行)하는 길 썩 아프지 않았다
잠시 네가 아니라 끈적끈적한 입술을 섞던, 어느 고깃집의 청춘을 떠올린 것만이 미안했다
담배 연기에 둘러싸인 너의 형이하학과
당신 배꼽 안에서 하룻밤 머물면 좋겠다던, 철없는 연애의 선언만을 되새겼다
이토록 평화로운 지옥에서 한 무명 시인이 왕이었던 시절
세상은 한 권의 책이고 그 책엔 네 이름만이 적혀 있었을 때
나는 온누리를 사랑할 수 있었지
데워지지 않는 슬픔이 통째 구워진 생선같이
구부러진 젓가락 아래 삼켜지길 기다리고 있다 해도
한 장의 밤을 지우개의 맘으로 밀며 가는 내가 있다
너의 비문들을 나에게 다오
네게 꼭 맞는 수식을 붙이기 위해 괄호의 공장을 불태웠지만
어디에도 살아서는 깃들 수 없는 마음
네 앞에서 내가 선해지는 이유
애무만으로 치유되지 않는 아픔이 산다는 게
싫지 않았다, 나를 스친 바람들에게 일일이 이름표를 달아주었지
너에게 골몰하는 병(病)으로 혀끝이 화하다
조용히 미쳐가고 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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