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2

한강, 해부극장 2

2019. 8. 30. 06:14


나에게
혀와 입술이 있다.
 
그걸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견딜 수 없다, 내가
 
안녕,
이라고 말하고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고 말하고
정말이에요,
라고 대답할 때
 
구불구불 휘어진 혀가
내 입천장에
매끄러운 이의 뒷면에
닿을 때
닿았다 떨어질 때
 
                                             *
 
그러니까 내 말은,
안녕.
어떻게  생각하세요.
           진심이야.
           후회하고 있어.
           이제는 아무것도 믿고 있지 않아.
 
                                                   *
 
나에게
심장이 있다,
통증을 모르는
차가운 머리카락과 손톱들이 있다.
 
그걸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나에게 붉은 것이 있다, 라고
견디며 말한다
일 초마다 오므렸다 활짝 펼치는 것,
일 초마다 한 주먹씩 더운 피를 뿜어내는 것이 있다
 
                                              *
 
수년 전 접질렸던 발목에
새로 염증이 생겨
걸음마다 조용히 불탈 때가 있다
 
그보다 오래전
교통사고로 다친 무릎이
마룻장처럼 삐걱일 때가 있다
 
그보다 더 오래전 으스러졌던 손목이
손가락 관절들이
다정하게
고통에 찬 말을 걸어온다
 
                                             *   
 
그러나 늦은 봄 어느 오후
검푸른 뢴트겐 사진에 담긴 나는
그리 키가 크지 않은 해골
살갗이 없으니
물론 야위었고
역삼각형의 골반 안쪽은 텅 비어 있다
엉치뼈 위의 디스크 하나가
초승달처럼 곱게,  조금 닳아 있다
 
썩지 않을,
영원히 멈춰 있는
섬세한 잔뼈들
 
뻥 뚫린 비강과 동공이
곰곰이 내 얼굴을 마주 본다
혀도 입술도 없이
어떤 붉은 것, 더운 것도 없이
 
                               *
 
몸속에 맑게 고였던 것들이
뙤약볕에 마르는 날이 간다
끈적끈적한 것
비통한 것까지
함께 바싹 말라 가벼워지는 날
 
겨우 따뜻한 내 육체를
메스로 가른다 해도
꿈틀거리는 무엇도 들여다볼 수 없을
 
다만 해가 있는 쪽을 향해 눈을 잠그고
주황색 허공에
생명, 생명이라고 써야 하는 날
 
혀가 없는 말이어서
지워지지도 않을 그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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