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있더라니 구부러진 뒤에야 밝은 줄 알았다 귀를 대고 한참 서 있었다 그저 아득하기만 한 그런 밤 이었다 누가 손등을 대고 까맣도록 칠해 놓은 그런
앉았다가 떠난 자리를 꽃이라 부르고 많은 것들을 보여 주고 싶었던 그래, 누가 흔들고 지나간 것들을 모아 그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러니 꽃이 다 그늘일 수밖에
있었던 말들을 놓아주었더니 스르륵 눈이 잠겼다
감고 싶었다 그랬다고 손목을 놓아주는 건 아니었을 텐데 스르륵 소리가 나고 눈을 감았다
그것도 소원이라고 휘청거리는 바람이 피었다 아무리 잡아도 허공이었다 허공에 대고, 울어놓은 자리마다 흔적이 생겼다 그 자리는 건들지 않았다 꺾을 힘마저 놓아버렸다
* 이역만리 먼곳까지 시집 한권을 사들고 온 이장숙에게 감사한다.
'text 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혜은, 우리 (0) | 2021.04.28 |
---|---|
허수경, 거짓말의 기록 (0) | 2021.04.23 |
박서영, 달의 왈츠 (0) | 2021.01.11 |
허수경, 라일락 (0) | 2021.01.08 |
이은규, 복숭아 기억통조림 (0) | 2021.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