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2

유희경, 그해 겨울

2021. 4. 28. 00:44

 

 

그해 겨울 오랜 연애를 마감하였고 파란 사파리 점퍼를 사서 계절이 다 닳도록 입었다 즐겨 들었던 노래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몇 갑의 담배를 피웠고 끊을 수가 없었다 떨지 않았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았던 그해 겨울,

많은 사람이 죽었다 이따금 전광판을 바라봤지만 나는 소식이 되지 않았다 이따금 生은 괜찮았다 이따금 새가 날았다 이따금 아는 사람을 만났고 명함을 주고받았다 어디든 나는 나이를 둘러매고 갔다 췌장을 앓았다 받아온 약은 먹지 않았다 그렇게 또 한 해가 지나가고 있었다

나무들은 멈추었다 겨울에 대해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했다 다 필요 없어 보이기만 했으니, 만져보았던 글자들이 몸을 떨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늙은 개들은 언덕을 따라 올라가고 아이들은 여전히 달리기를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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