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사랑해서 아프다고 소리쳤어. 그 소리는 뻗어나가 천장에서 날카롭게 얼어붙지. 유리처럼. 공중에서 부딪혀 깨지는 소리, 바스라지는 소리, 부서져 흩어지는 소리. 화날 때 왜 사람들이 물건을 집어 던지는 줄 알아? 자신의 분노가 얼마만 한 크기인지, 어떤 모양인지 궁금해서 그래. 그래서 무엇인가 와장창 소리 나고 부서지고 흩어지고 깨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자신의 가슴속에 담겨 있던 화를 눈으로 보는 거야. 거친 호흡을 내쉬며 천천히 바라보는 거야 그렇게 관찰된 객관적 상관물이 된 자신의 화를 하염없이, 하염없이 바라보다 보면 알게 돼. 아, 나의 화는 별거 아니구나. 유리처럼 투명하고, 서리처럼 뾰족하고, 공중에서 깨지고, 흩어지고, 흩어져서 날리고, 날려 사라지는. 급기야 어디로 가 버렸는지 알 수 없는 분노들. 싸움이 잦은 집 세간들을 잘 봐 봐. 그 집 식구들 얼굴처럼 어딘가 어둡게 그림자를 만드는 찌그러진 구석이 있어. 테이프와 순간접착제로 잘 붙였지만 주의 깊은 사람은 금방 알아챌 수 있게 살짝 깨져 있지. 전기압력밥솥의 뚜껑도 일그러져 모양이 반듯하지 않지만 처량하게도 제구실을 하며 매일매일 칙 칙 칙 칙. 압력을 빼며 밥을 짓지. 너를 너무 사랑해서 아프다고, 이렇게 내 안에는 폭발할 게 많은데 참고, 참고, 참고, 참으며 다 끌어 담고. 매일매일을 규칙적으로 칙 칙 칙 칙. 시간 맞춰 빼주지 않으면 스스로 빠질 수 없는 화를 가득 담고. 매일매일 저녁이면 밥 짓는 냄새가 집집마다 흘러나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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