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2

안현미, 다뉴세문경

2016. 8. 18. 20:25


언젠가 나는 거울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게 오늘밤이 될지는 몰랐지만 말입니다 거울 밖엔 장미가 한창입니다 어디선가 몰려온 구름처럼 무거운 음악이 흐르는 이 곳을 빠져나가면 앞도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는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에 빠지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으로도 사랑에 빠져버릴 수 있었던 초능력을 상실한 지 너무 오래 다시 장미는 피는데 나는 죽은 사람인 것만 같습니다 자명종이 울리는 밤입니다 다른 세상이 열릴 것만 같은 밤입니다
 
   언젠가 나는 거울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물냉면을 먹고 낙산 성곽 길을 내려오던 밤, 당신이 내게 건넨 다뉴세문경을 닮은 거울에 대하여, 그 거울에 새겨진 기하학적인 무늬에 대하여, 오랜 세월 땅 속에 묻혀있던 그 거울에 비쳤을 오래된 어둠에 대하여, 오래된 두려움에 대하여, 그 거울에 새겨진 삼각형문이 주술에서는 재생을 의미한다고 말해주던 당신의 옆얼굴에 대하여, 다시 자명종이 울리는 밤입니다 다른 세상으로 가는 거울 속입니다





'text 2'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소연, 명왕성에서 2  (0) 2016.08.24
김소연, 오키나와, 튀니지, 프랑시스 잠  (0) 2016.08.20
이현호, 금수의 왕  (0) 2016.08.16
김경미, 다정이 병인 양  (0) 2016.07.17
김경주, 비정성시  (0) 2016.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