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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호, 금수의 왕

2016. 8. 16. 13:04
금수만도 못한 인간이란 말 들어봤다면
 
그렇게 말한 건 자기 배로 날 낳은 한 암컷이었지 내 하나뿐인 언청이 친구만 평생 욕하다 내장까지 썩어버렸지만
그년이야말로 태어나서 가장 잘못 사귄 사람
 
발 달린 것들 모두 한 마리 미친개를 피해 다닌 사건들의 시간
달아나기 전에 저게 왜 미쳤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 걸까
 
날카로운 것들이 정점을 가진 것들이 눈부셔
 
세상이 끝날 것처럼 끝난 것처럼
나는 길거리를 날뛰었고 그런 날만큼은
우연의 자식이 아니었지
 
그러다 이야기가 되려니 개 같은 사랑이…
불안을 먹이고 불안은 사랑을 먹이며
 
다음엔 안개로 태어나고 싶다는
널 보는 동안만이 이 지상의 삶에서 손 뗄 수 있었지
너 없이도 세상이 계속된다고 믿는 것들에겐 함부로 칼을 꽂았고
 
다음엔 불빛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술집 창가에 비친 널 똑바로 볼 수 없어 나는 눈을 도려내고 말았지
그토록 아름다운 것 앞에서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요
 
희열에 찬 살인자의 얼굴이 아니고는
 
단지 마음이라는 죄를 안고 태어나
그 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가두었네
귀뚜라미 붉은 달 끈 떨어진 운동화 훔친 사진기 부러진 칼날 추락하는 고양이 네 머리카락…
나의 배심원들
 
일평생 누굴 도운 일 없는 인간이지만 그래도 단 한 번 거미줄에 걸린 나비를 풀어준 적 있다 해도
 
금수 같은 놈이라는 말 들어봤다면
 
필연을 완성한 금수의 왕은 불에 달궈진 쇠 구두를 신은 듯 춤추었네
순수한 죄의 숲을 가로지르며
먹이에게 달음박질하는 그 맹목의 식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