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갈 수 있는 끝이
 여기까지인 게 시시해
 소라게처럼 소라게처럼

 우리는 각자
 경치 좋은 곳에 홀로 서 있는 전망대처럼
 높고 외롭지만
 그게 다지

 우리는 걸었지 돌아보니 발자국은 없었지
 기었던 걸까 소라게처럼 소라게
 처럼

                               +

 신중해지지 않을게
 다만 꽃처럼 향기로써 이의 제기를 할게
 이것을 절규나 침묵으로 해석하는 건
 독재자의 업무로 남겨둘게

 너는, 네가 아니라는 이 아득한 활주로, 나는 달리
고 너는 받치고 나는 날아오르고 너는 손뼉을 쳐줘
우리는 멀어지겠지만 우리는 한곳에서 만나지 그때마
다 우리가 만났던 그 장소들에서, 어깨를 겯는 척하
며 어깨를 기댔던 그곳에서

 "좋은 위로는 어여쁜 사랑이니, 오래된 급류가의
어린 딸기처럼"*

                              +

 소라게 한 마리가 집을 버리는 걸 우리는 본 적이
있지 팔 한쪽 다리 한쪽을 버려가며 걷는 걸 본 적이
있지 그때 재스민 한 송이가 떨어지는 걸 본 적이 있
지 소라게가 재스민 꽃잎을 배낭처럼 업고서 다시,
걸어가는 걸 우리는 본 적이 있지

 우리가 우리를 은닉할 곳이
 여기뿐인 게 시시해
 소라게처럼 소라게처럼
                 
                             +

 나의 발뒤꿈치가 피를 흘리거든
 절벽에 핀 딸기 한 송이라 말해주렴

 너의 머리칼에서
 피냄새가 나거든
 재스민 향기가 난다고 말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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