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온 엽서에는 흰 벽에 햇살이 가득했고 맨 마지막 안녕이란 말은 등짐을 지고 가파른 골목을 오르는 당나귀처럼 낯설었다. 내 안녕은 지금 어디 있는가 가만히 몸을 만져본다. 두꺼운 책처럼 아무도 오지 않는 저녁 그 어떤 열렬함도 없이 구석에서 조용조용 살았다. 오늘 내게 안녕을 묻는 이의 이름을 떠올린다. 그에게 수몰된 내 마음 보였던가. 구석에서 토마토 잎의 귀가 오래도록 자란다고 말했던가. 내 몸의 그림자는 구석만을 사랑하는지 구석으로만 자란다는 말을 했던가. 내 안녕은 골목 끝에서 맨드라미를 만나 헛꿈들을 귓밥처럼 파내던 날 죽어버렸다고, 물은 결국 말라서 죽는다고 말했던가. 나는 누군가에게 안녕이란 말을 했던가. 더는 물어뜯고 싶지 않다고 조용히 말했던가. 안녕을 묻는 일은 물속을 오래 들여다보는 일 같다고, 물속에 대고 이름을 불러주는 일, 그리하여 물속에 혼자 집 짓는 일이라고 말했던가. 안녕, 그 말은 맨발을 만지는 것처럼 간지러웠지만 목을 매고 싶을 만큼 외로웠다고 비명처럼 말했던가, 말을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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